사우디와 이란은 같은 이슬람 아닌가? 두 나라가 앙숙이 된 진짜 이유

사우디와 이란은 같은 이슬람 아닌가? 두 나라가 앙숙이 된 진짜 이유

사우디와 이란은 같은 이슬람 아닌가? 두 나라가 앙숙이 된 진짜 이유

“사우디아라비아도 이슬람 국가이고 이란도 이슬람 국가 아닌가? 그런데 왜 서로 원수처럼 지낼까?”

“수니파와 시아파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전쟁까지 벌이는 걸까?”

“2023년에는 중국 중재로 화해했다는데, 2026년에는 왜 다시 이란과 후티 이야기가 사우디 공격 뉴스에 등장하는 걸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2023년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외교관계를 복원하기로 합의했습니다. 2016년 단교 이후 약 7년 만의 화해였습니다. (중국 외교부)

하지만 그것이 두 나라가 ‘같은 편’이 됐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2026년 중동 전쟁이 확대되면서 이란의 공격이 사우디 영토까지 번졌고, 로이터는 사우디가 3월 말 이란 영토를 비공개로 공습했다고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9월 들어서는 이란과 가까운 예멘 후티의 사우디 공격까지 다시 격화됐습니다. (Reuters · Reuters)

결론부터 말하면 사우디와 이란이 싸우는 이유를 단순히 ‘수니파와 시아파가 달라서’라고 설명하면 절반밖에 맞지 않습니다.

종교적 차이는 갈등의 중요한 배경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 왕정과 이슬람공화국이라는 체제 차이, 중동의 주도권 경쟁, 미국과의 관계, 군사안보, 석유 수송로, 그리고 후티·헤즈볼라·이라크 무장세력 같은 문제가 겹쳐 있습니다.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둘 다 이슬람 국가가 맞는데, 무엇이 다른 걸까?

둘 다 이슬람 국가가 맞는데, 무엇이 다른 걸까?

맞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이슬람 국가입니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가 중심인 국가이고, 이란은 시아파가 압도적으로 많은 국가입니다. 세계 무슬림 전체로 보면 수니파가 약 85~90%, 시아파가 약 10~15% 정도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비율에는 조사별 차이가 있지만 수니파가 다수이고 시아파가 소수라는 큰 구조는 같습니다. (Pew Research Center · CFR)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 완전히 다른 종교인 것은 아닙니다. 둘 다 이슬람교이고, 같은 꾸란을 경전으로 삼으며 예언자 무함마드를 따릅니다.

그렇다면 왜 갈라졌을까요?


수니파와 시아파는 도대체 왜 갈라졌나?

수니파와 시아파는 도대체 왜 갈라졌나?

시작은 약 1,400년 전의 지도자 계승 문제였습니다.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 뒤 “이슬람 공동체를 누가 이끌 것인가”를 놓고 견해가 갈렸습니다.

훗날 수니파로 이어진 쪽은 공동체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고 아부 바크르를 초대 칼리프로 받아들였습니다. 반면 시아파로 이어진 쪽은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와 그의 후손에게 지도자의 정통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시아’라는 말도 ‘알리의 당파’라는 의미에서 출발했습니다. (Pew Research Center)

이후 역사와 정치가 겹치면서 종교지도자의 권위, 법 해석, 의례 등에서도 차이가 생겼습니다.

특히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680년 카르발라에서 살해된 사건은 시아파 정체성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으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종파가 다르다고 해서 1,400년 동안 계속 서로 전쟁을 했던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여러 지역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고, 종파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오늘날 사우디와 이란의 경쟁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CFR도 현대의 사우디·이란 갈등에는 종파 문제뿐 아니라 정치·경제·지정학적 경쟁이 함께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CFR)


그렇다면 사우디와 이란은 단순히 종교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닌가?

아닙니다. 오늘날 두 나라의 경쟁은 종교 갈등이라기보다 종교가 결합된 국가 간 패권 경쟁에 더 가깝습니다.

사우디와 이란은 종파뿐 아니라 국가 성격부터 상당히 다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계 왕정국가입니다. 이슬람의 두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고, 사우디 국왕은 ‘두 성지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반면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닙니다. 페르시아계가 중심이고 주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합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에는 시아파 성직자를 정점으로 하는 이슬람공화국 체제가 들어섰습니다.

쉽게 말하면 ‘둘 다 이슬람’이라는 공통점만으로 같은 외교노선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국가이고, 서로 다른 체제와 안보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쟁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1979년 이란혁명입니다.


왜 하필 1979년부터 두 나라 사이가 크게 틀어졌을까?

왜 하필 1979년부터 두 나라 사이가 크게 틀어졌을까?

1979년 이전에도 사우디와 이란은 경쟁 관계가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강한 적대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팔레비 왕조가 다스렸고 미국의 중요한 중동 동맹국이었습니다. 사우디 역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미국은 한때 이란과 사우디를 페르시아만 안보를 떠받치는 두 축으로 활용했습니다. (CFR)

그런데 1979년 이란에서 왕정이 무너졌습니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혁명으로 친미 왕정이 사라지고, 반미 성향의 시아파 이슬람공화국이 등장했습니다. 이란 혁명 지도부는 자신들의 혁명 정신이 다른 이슬람 국가에도 확산되기를 바랐습니다. (CFR)

사우디 왕실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웃 나라에서 왕정을 무너뜨린 종교혁명이 성공했고, 그 혁명정부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려 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도 사우디는 이란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며 이라크를 지원했습니다. 전쟁은 1988년까지 이어졌습니다. (CFR)

이때부터 두 나라 사이의 문제는 단순히 “수니파냐 시아파냐”를 넘어섰습니다.

“중동에서 누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라는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후티·헤즈볼라·이라크 무장세력이 자꾸 등장할까?

그런데 왜 후티·헤즈볼라·이라크 무장세력이 자꾸 등장할까?

바로 이 부분이 사우디·이란 갈등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두 나라는 오랫동안 직접 전면전을 벌이기보다 다른 나라의 정부나 정치세력, 무장조직을 통해 영향력을 겨뤄왔습니다. 그래서 흔히 ‘대리전’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란은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일부 시아파 무장세력, 예멘 후티 등과 오랫동안 군사·정치적 관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이란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반대로 사우디는 친사우디 정부와 아랍권 국가들,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활용해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해 왔습니다.

예멘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후티는 2014년 예멘 수도 사나를 장악했고, 사우디는 2015년 아랍국가 연합군을 이끌고 군사개입에 나섰습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이란과 가까운 무장세력이 자국 남쪽 국경 바로 밑에서 세력을 넓히는 상황이었습니다. (Reuters)

다만 여기서 하나는 정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후티를 단순히 ‘이란의 지시만 따르는 조직’이라고 보는 것도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후티는 시아파 가운데서도 자이드파에 속하고, 예멘 내부에서 자체적인 정치·종교·경제적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란이 무기·자금·훈련 등을 지원해왔다는 평가가 있지만 후티는 스스로 이란의 대리세력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후티의 독자적인 국내 이해관계를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Reuters)

즉 ‘이란이 지원한다’와 ‘이란이 모든 행동을 직접 명령한다’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두 나라가 정말 완전히 등을 돌린 결정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두 나라가 정말 완전히 등을 돌린 결정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2016년 사건이 중요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6년 1월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님르 알님르를 처형했습니다. 이에 이란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났고 시위대가 테헤란의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했습니다.

사우디는 결국 이란과 외교관계를 끊었습니다. 이후 두 나라는 예멘·시리아·레바논·이라크 등 여러 지역에서 반대편 세력을 지원하며 경쟁했습니다. (CFR · Reuters)

그런데 7년 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2023년 3월 10일 사우디와 이란은 중국의 중재 아래 베이징에서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양국은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도 약속했습니다. (중국 외교부)

실제 관계 개선 움직임도 이어졌습니다. 2024년에는 이란인의 사우디 우므라 순례가 9년 만에 재개됐고, 2025년 4월에는 사우디 국방장관 칼리드 빈 살만 왕자가 테헤란을 방문했습니다. (Reuters · Reuters)

여기까지만 보면 “그럼 두 나라가 화해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화해는 했습니다.

하지만 ‘화해’와 ‘동맹’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2023년에 화해했다는데 2026년에는 왜 다시 부딪쳤나?

2023년에 화해했다는데 2026년에는 왜 다시 부딪쳤나?

2023년 합의의 핵심은 서로 친구가 되자는 것보다는 위험한 충돌을 줄이자는 데 가까웠습니다.

사우디는 경제개혁과 외국인 투자에 집중하려면 주변 지역이 안정돼야 했고, 이란 역시 제재와 안보압박 속에서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양국 사이의 근본적인 경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전쟁이 확대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은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 국가들까지 번졌습니다. 3월 사우디 정부는 이란의 군사무관과 대사관 직원 일부를 추방했고, 추가 공격이 계속될 경우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Reuters)

이어 로이터는 서방 당국자 2명과 이란 당국자 2명을 인용해 사우디 공군이 3월 말 이란 영토를 여러 차례 비공개 공습했다고 5월 보도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사우디 정부가 공식적으로 공습 사실을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로이터 역시 구체적인 공격 목표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사우디가 공식적으로 이란 공습을 발표했다’고 표현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Reuters)

그리고 2026년 9월에는 또 다른 전선이 달아올랐습니다.

이란과 가까운 예멘 후티가 사우디 남부 도시와 에너지시설을 미사일·드론으로 공격했고, 9월 8일 공격에서는 73명이 다쳤다고 사우디 측이 밝혔습니다. 이후 후티가 홍해 연안에서 세력을 확대하면서 사우디와의 긴장도 더 높아졌습니다. (Reuters · Reuters)

결국 2023년의 화해는 수십 년간 쌓인 불신을 없앤 것이 아니라, 충돌을 관리할 수 있는 대화창구를 다시 만든 것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야기는 왜 항상 같이 나올까?

이것도 사우디와 이란 관계를 이해하려면 빼놓기 어렵습니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이란은 미국과 적대관계로 돌아섰습니다. 반면 사우디는 오랫동안 미국의 중요한 걸프 안보 파트너였습니다. 1979년 혁명으로 미국이 이란이라는 기존 안보축을 잃은 뒤 사우디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CFR)

그래서 이란 입장에서는 사우디를 단순한 이웃 국가로만 보지 않습니다.

걸프 지역의 미군기지와 미국의 안보망이 이란을 둘러싸고 있다고 인식합니다.

반대로 사우디 입장에서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이란과 가까운 무장세력의 존재가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봅니다.

이스라엘 문제도 여기에 겹칩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강하게 적대해 왔고, 레바논 헤즈볼라를 비롯한 여러 세력을 지원해 왔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의 충돌이 커지면 그 파장이 미군기지가 있는 걸프 국가들과 사우디의 안보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렇다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무조건 하나의 편으로 묶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중동에서는 ‘적의 적은 친구’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나누기 어려운 관계가 많습니다. 국가별 이해관계가 사안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중동 싸움이 왜 한국 기름값까지 흔들까?

그런데 이 중동 싸움이 왜 한국 기름값까지 흔들까?

여기서 사우디·이란 갈등이 한국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이란 바로 앞에는 호르무즈 해협이 있습니다. 페르시아만 산유국의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핵심 길목입니다.

반대쪽 사우디 서쪽과 예멘 사이 홍해 입구에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있습니다.

두 해협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호르무즈는 페르시아만에서 아라비아해로 나가는 동쪽 출구이고, 바브엘만데브는 홍해에서 아덴만·인도양으로 나가는 서쪽 출구입니다.

2026년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항행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사우디는 호르무즈를 우회하기 위해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 얀부까지 연결된 동서횡단 송유관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9월 12일 이 송유관마저 이라크에서 발사된 것으로 조사된 드론 공격 이후 일시적으로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최근 이 송유관으로 하루 약 400만~500만 배럴이 이동하고 있었다고 로이터는 전했습니다. (Reuters)

동시에 후티가 바브엘만데브 부근까지 세력을 확대하면서 홍해 항로 위험도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9월 들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배경에도 이런 공급 불안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Reuters)

한국처럼 원유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나라에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일정한 시차를 두고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과 기업의 에너지 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선박이 우회하거나 보험료와 운임이 올라가면 물류비 부담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우디와 이란의 충돌 뉴스가 나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단순히 “두 나라가 싸운다”보다 먼저 호르무즈 해협과 사우디 석유시설, 홍해 항로가 안전한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결국 앞으로 무엇을 보면 될까?

사우디와 이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해했느냐, 다시 적이 됐느냐’라는 이분법이 아닙니다.

대화와 경쟁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사우디와 이란의 직접 공격이 다시 발생하는지, 후티와 이라크의 이란계 무장세력 활동이 확대되는지, 양국 간 외교채널이 계속 유지되는지,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 항행이 안정되는지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후티 문제는 중요합니다.

사우디와 이란이 직접 싸우지 않더라도 후티의 사우디 공격이 확대되면 리야드는 결국 이란의 영향력 문제를 다시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란이 실제로 후티의 모든 군사행동을 통제한다고 단정하는 것도 현재 확인된 사실보다 지나간 표현입니다.

결국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단어는 ‘종교전쟁’보다는 ‘지역 패권 경쟁’에 가깝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는 그 경쟁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역사적·종교적 배경이고, 실제 갈등을 움직이는 것은 국가안보와 영향력, 동맹, 군사력, 에너지 수송로입니다.


뉴알남 한 줄 정리

사우디와 이란은 같은 이슬람권이지만 같은 편은 아닙니다.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종교적 차이 위에 1979년 이란혁명 이후의 체제 경쟁, 미국과의 관계, 중동 주도권, 후티 등 무장세력, 석유와 해상수송로 문제가 겹치면서 수십 년간 경쟁해 왔습니다.

따라서 “수니파와 시아파라서 싸운다”보다 “종파 차이가 중동 패권 경쟁과 결합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사우디 이란 관계, 핵심 질문으로 한눈에 정리

Q. 사우디와 이란은 둘 다 이슬람 국가가 맞나요?

맞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이슬람 국가입니다. 다만 사우디는 수니파가 중심이고 이란은 시아파가 압도적으로 많은 국가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Q. 수니파와 시아파는 서로 다른 종교인가요?

아닙니다. 모두 이슬람교에 속하며 같은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를 따릅니다. 분열의 출발은 632년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를 누가 계승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였습니다.

Q. 그렇다면 사우디와 이란은 종교가 달라서 싸우는 건가요?

종교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수니파·시아파 차이는 중요한 배경이지만 현재의 갈등에는 중동 주도권, 국가안보, 미국과의 관계, 군사력, 에너지 수송로 등이 함께 작용합니다.

Q. 1979년 이란혁명이 왜 중요한가요?

1979년 이란에서 친미 왕정이 무너지고 반미 성향의 시아파 이슬람공화국이 등장하면서 사우디가 이란을 훨씬 큰 체제·안보 위협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사우디·이란 경쟁이 본격화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Q. 후티는 이란이 직접 조종하는 조직인가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란은 후티를 지원해왔지만 후티 역시 예멘 내부의 독자적인 정치·군사적 목표를 가진 세력이며, 후티는 자신들이 이란의 대리세력이라는 표현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Reuters)

Q. 사우디와 이란은 2023년에 화해한 것 아닌가요?

외교관계는 복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맹을 맺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충돌 위험을 줄이고 대화채널을 복원한 데 가까웠고, 2026년 중동 전쟁이 확대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불신이 다시 크게 드러났습니다.

Q. 2026년에는 사우디와 이란이 직접 싸운 적도 있나요?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이 사우디 영토까지 번졌고, 로이터는 사우디가 2026년 3월 말 이란 영토를 비공개 공습했다고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다만 사우디 정부가 해당 공습 사실을 공식 확인한 것은 아니며 구체적인 공격 목표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Reuters)

Q. 사우디·이란 갈등이 한국에도 영향을 주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바브엘만데브 항로, 사우디 석유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국제유가와 해상운임이 상승할 수 있고 이는 국내 연료가격과 물류비, 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 뉴알남이 풀어드린 이슈, 이해에 도움이 되셨나요? 🙂
앞으로도 뉴스 속 궁금증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주요 출처

수니파·시아파와 사우디·이란 경쟁의 배경

1979년 이란혁명과 미국·사우디 관계

2016년 단교와 2023년 관계 복원

2026년 재충돌과 후티 문제

호르무즈·홍해와 에너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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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란과 가까운 후티는 왜 다시 사우디를 공격하는 걸까?”

사우디와 이란의 경쟁이 실제 충돌로 번지는 대표적인 곳이 예멘입니다. 최근 후티가 사우디를 다시 위협하고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까지 영향력을 넓히면서 왜 사우디가 긴장하는지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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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앙숙인 사우디까지 이란은 왜 같은 무슬림끼리 뭉치자고 하는 걸까?

사우디와 이란은 오랫동안 중동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란은 오히려 사우디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에 미국·이스라엘에 맞서 함께 뭉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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