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가 세계 최초 2,000승을 거뒀다는데, 40년 동안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둑을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돌부처’ 이창호 9단을 기억하실 겁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바둑판 앞에 앉아 조용히 승리를 쌓아가던 천재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이창호가 또 하나의 역사를 썼습니다.
세계 프로바둑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2,000승을 달성한 것입니다.
올해 51세인 이창호는 11세에 프로기사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40년이 넘도록 바둑판을 떠나지 않고 승리를 쌓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놀라운 건 단순히 오래 활동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천재 소년이 중년의 베테랑이 된 지금도 현역으로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렇게 강했던 조훈현도 못 이룬 기록을 이창호는 어떻게 달성했을까?”
그리고 세계대회를 휩쓸던 전성기가 지난 뒤에도 승리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 본문 이미지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실제 사진이 아니며, 인물·장소·상황의 표현은 실제와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창호의 2,000승을 이해하려면 1986년 처음 승리를 거둔 소년 시절부터 2026년의 바둑판까지 이어진 시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창호의 2,000번째 승리는 어떤 대국에서 나왔을까?

이창호 9단의 2,000번째 승리는 2026년 10월 26일 전북 완주에서 열린 2026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11라운드에서 나왔습니다.
상대는 이창호와 동갑인 최명훈 9단이었습니다.
이창호는 흑을 잡고 207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습니다. 불계승이란 바둑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상대가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돌을 거두면서 승패가 결정되는 방식입니다.
이날 승리로 이창호는 프로 입단 후 40년 2개월 만에 2,000번째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연합뉴스 · 뉴스1)
통산 성적을 숫자로 보면 더 놀랍습니다
| 기록 | 2026년 10월 26일 기준 |
|---|---|
| 총 공식 대국 | 2,831국 |
| 승리 | 2,000승 |
| 무승부 | 1무 |
| 패배 | 830패 |
| 공식 승률 | 70.67% |
| 프로 활동 기간 | 약 40년 2개월 |
바둑은 상대와 실력으로 승부하는 경기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매번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창호는 2,830번의 승패가 결정된 대국에서 약 70.7%를 승리로 마무리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기록이 특정 대회에서 거둔 승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00승은 세계대회 우승 횟수도, 세계 챔피언을 2,000번 이겼다는 뜻도 아닙니다.
한국기원이 집계하는 프로 공식 대국에서 평생 쌓은 개인 통산 승리입니다.
세계대회, 국내 기전, 리그 등 여러 공식 대국의 승리가 오랜 세월 축적된 결과입니다.
11세 소년은 어떻게 40년 동안 2,000승을 쌓았을까?

이창호의 2,000승은 어린 나이에 프로기사가 된 천재성과, 오랜 기간 활동을 이어온 꾸준함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1975년 태어난 이창호는 1986년 8월, 만 11세 1개월의 나이로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그해 8월 26일 제62회 승단대회에서 조영숙 초단을 꺾으며 프로 첫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후 승리의 기록은 이렇게 쌓였습니다.
| 시점 | 통산 승리 기록 |
|---|---|
| 1986년 8월 | 프로 첫 승 |
| 2000년 10월 | 1,000승 |
| 2010년 1월 | 1,500승 |
| 2021년 2월 | 1,800승 |
| 2024년 9월 | 1,900승 |
| 2025년 12월 | 1,969승, 역대 최다승 신기록 |
| 2026년 10월 | 세계 최초 2,000승 |
1986년 첫 승부터 2000년 1,000승까지는 약 14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10대부터 20대까지 엄청난 속도로 승수를 쌓았다는 뜻입니다.
2000년 이후에도 승리는 계속됐습니다. 2010년에는 1,500승, 2024년에는 1,900승을 기록했습니다. (한국기원 · 사이버오로)
여기서 2,000승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계산해 보겠습니다.
40년 동안 2,000번 승리하려면 1년에 평균 약 50승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연평균 환산입니다. 매년 정확히 50승씩 거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창호는 전성기를 지난 뒤에도 공식 대국에 꾸준히 참가했습니다. 2025년에도 12월 1일까지 51승을 기록했을 정도입니다. (한국기원)
젊은 시절 쌓은 압도적인 승수에 중년 이후의 꾸준한 활동이 더해진 것입니다.
이 기록을 보면 이창호의 대단함은 단순히 어린 시절부터 바둑을 잘 뒀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아 계속 이겼다는 사실이 더 특별합니다.
조훈현과 이창호는 왜 스승이면서 라이벌이 됐을까?

이창호의 2,000승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스승 조훈현 9단입니다.
이창호 이전에 한국 바둑의 최다승 기록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 조훈현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 이상이었습니다.
당대 최고 기사 조훈현의 집에 들어간 천재 소년
1984년, 어린 이창호는 당시 한국 바둑의 최강자였던 조훈현의 내제자가 됐습니다.
내제자란 스승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직접 가르침을 받는 제자를 말합니다.
이창호는 그렇게 스승의 곁에서 바둑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1986년 프로기사가 된 뒤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어린 제자는 어느새 스승의 타이틀까지 위협하는 경쟁자가 됐습니다.
1990년 2월, 이창호는 최고위전에서 조훈현을 꺾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당시 어린 소년이 한국 바둑을 지배하던 스승을 넘어서는 장면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서울신문 당시 보도)
스승이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제자가 결국 스승에게 가장 강력한 도전자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2025년 개봉한 영화 ‘승부’의 바탕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병헌이 조훈현을, 유아인이 이창호를 연기했습니다. (한국기원)
그리고 35년 뒤, 스승의 최다승 기록까지 넘었다
조훈현이 오랜 세월 세운 통산 최다승 기록은 1,968승이었습니다.
이창호는 2025년 12월 1일 김수장 9단을 꺾고 개인 통산 1,969승을 달성했습니다.
그 순간 스승의 기록이 제자의 기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10개월 남짓 지난 2026년 10월 26일, 마침내 2,000승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한국기원 공식 보도자료)
| 비교 항목 | 조훈현 9단 | 이창호 9단 |
|---|---|---|
| 관계 | 스승 | 제자 |
| 통산 승수 | 1,968승 | 2,000승 |
| 국내외 통산 우승 | 162회 | 142회 |
| 특징 | 한국 바둑 전성기를 연 거장 | 세계 프로 통산 최다승 기록 보유 |
두 사람의 기록을 비교하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조훈현은 통산 우승 횟수에서 여전히 이창호보다 앞서 있습니다.
반면 이창호는 프로 통산 승수에서 스승을 넘어섰습니다.
스승이 쌓아 올린 시대 위에서 제자가 또 하나의 새로운 기록을 만든 셈입니다.
‘돌부처’ 이창호는 무엇이 그렇게 강했을까?

이창호가 세계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형세 판단과 정교한 끝내기 능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승부 태도도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붙은 별명이 바로 ‘돌부처’입니다.
바둑에서 끝내기가 왜 중요한 걸까?
바둑은 바둑판에 돌을 놓으면서 서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경기입니다.
상대보다 많은 집을 확보하면 이깁니다.
초반에는 큰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중반에는 돌의 생사를 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런데 승패가 확정되지 않은 바둑에서는 마지막까지 집을 계산하며 작은 이익을 확보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을 ‘끝내기’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중반까지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집을 차지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에 상대보다 한두 집을 더 확보할 수 있다면 승패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이창호는 바로 이런 미세한 차이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기사로 평가받았습니다.
큰 싸움에서 무리하게 승부를 결정짓기보다 전체 판세를 정확히 읽고, 이길 수 있는 흐름을 끝까지 유지하는 능력이 강점이었습니다.
물론 이창호가 공격을 못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격할 때와 지켜야 할 때를 구분하고, 필요한 만큼의 승리를 만드는 판단이 정교했다는 의미입니다.
표정이 없어도 속에서는 치열한 계산이 이어졌다
바둑 팬들에게 이창호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기억됩니다.
승리해도 크게 웃지 않고, 패하더라도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돌부처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창호는 2025년 인터뷰에서도 승리했다고 자만하며 둔 수로 패했을 때 큰 아픔을 느꼈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침착함과 실제 승부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른 문제였던 것입니다. (조선일보 인터뷰)
바둑판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보다 더 화려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정확한 판단을 이어가는 능력입니다.
이창호는 이런 바둑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 기사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상하이 대첩’은 왜 지금도 이창호의 전설로 남아 있을까?

이창호의 가장 유명한 승부 가운데 하나는 2005년 농심신라면배에서 완성된 ‘상하이 대첩’입니다.
당시 한국은 중국·일본과 국가대항전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농심신라면배는 세 나라에서 각각 다섯 명의 프로기사가 출전해 연승전 방식으로 우승국을 결정하는 대회입니다.
한 선수가 승리하면 계속 다음 상대를 만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다른 선수들이 모두 탈락하고 이창호 한 명만 남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창호가 패하면 한국의 우승 도전도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혼자 남은 이창호가 만들어낸 역전극
이창호는 2004년 말부터 2005년 2월까지 이어진 해당 대회에서 중국과 일본의 기사들을 상대로 5연승을 거뒀습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 네 번의 승리가 2005년 2월 중국 상하이에서 나왔습니다.
한국 선수 한 명이 남아 다른 나라의 강자들을 차례로 꺾고 역전 우승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승부는 ‘상하이 대첩’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바둑 팬들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연합뉴스)
1992년 최연소 세계 챔피언 등극이 이창호라는 천재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면, 2005년 상하이 대첩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승부사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세계대회 우승 기록도 놀랍습니다.
이창호는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통산 17차례 정상에 올랐습니다.
국내외를 합친 전체 우승은 142회입니다. (연합뉴스)
그가 단순히 많은 경기를 이긴 선수가 아니라 세계 최정상에서 오랜 시간 경쟁했던 선수였다는 증거입니다.
전성기가 끝난 뒤에도 이창호가 승리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

이창호가 40년 동안 승리를 쌓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린 나이에 시작한 긴 선수 생활과 세계 최정상급 실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전성기가 지나간 뒤에도 공식 대국에 계속 출전할 수 있었고, 실제로 승리를 이어왔다는 점입니다.
바둑은 나이가 든다고 반드시 선수 생활이 끝나는 종목은 아닙니다.
물론 젊은 기사들과의 경쟁은 쉽지 않습니다. 바둑도 깊은 수읽기와 집중력, 체력 관리가 필요한 두뇌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래 활동한 기사들이 경쟁을 계속할 수 있는 무대도 마련돼 있습니다.
레전드리그도 공식 승리 기록에 포함됩니다
이번 2,000번째 승리가 나온 레전드리그는 베테랑 프로기사들이 참가하는 정식 바둑 대회입니다.
2026년 레전드리그의 선수 선발 대상은 남자 50세 이상, 여자 40세 이상 프로기사입니다. 이 기준은 만 나이가 아닌 연 나이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한국기원 레전드리그 규정)
이창호는 현재 51세로 출전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수소도시완주 소속으로 레전드리그에 참가해 효림 소속 최명훈 9단을 이겼습니다.
레전드리그는 단순한 친선 행사나 이벤트 대국이 아닙니다. 공식 승패와 팀 성적이 기록되는 정규 경쟁 무대입니다.
따라서 이 대회에서 거둔 승리 역시 프로기사 통산 기록에 포함됩니다.
다만 여기서 구분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현재의 이창호가 20~30대 시절처럼 세계 최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계 정상에 있던 시절의 실력과 현재의 경쟁력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오래전 세계대회를 제패했던 선수가 지금도 정식 대회에 참가하고 승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특별합니다.
2,000승을 거둔 이창호의 소감
기록을 달성한 뒤 이창호가 밝힌 소감은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게 돼 개인적으로도 영광이고 기쁘다.”
그리고 좋아하는 바둑을 계속 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연합뉴스)
40년 동안 승부의 세계에서 활동한 선수가 가장 기뻐한 것은 기록 자체뿐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바둑을 지금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기원은 2026년 11월 3일 이창호의 통산 2,000승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뉴스1)
앞으로도 이창호가 공식 대국에 출전해 승리한다면 현재의 2,000승 기록은 계속 늘어날 수 있습니다.
[결론] 이 뉴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이창호 9단이 2026년 10월 26일 세계 프로바둑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2,000승을 달성했습니다.
단순히 2,000번 이겼다는 숫자만 보면 그 놀라움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11세에 프로에 입단해 어린 나이에 세계 정상에 올랐고, 스승 조훈현을 넘어 한국 바둑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세계대회에서 17차례 우승하고, ‘상하이 대첩’과 같은 명승부를 남겼습니다.
전성기가 지난 뒤에도 현역으로 승부를 계속하며 40년 넘게 승리를 쌓았습니다.
이창호의 2,000승은 압도적인 전성기의 실력과 오랜 선수 생활에서 이어진 꾸준함이 함께 만들어낸 기록입니다.
한때 바둑판 앞에 앉아 있던 11세 소년은 이제 51세의 베테랑 기사가 됐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바둑판 앞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만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초 2,000승은 단순히 많이 이긴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이 40년 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이어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창호 2000승, 핵심 질문으로 한눈에 정리
Q. 이창호 9단의 현재 나이는 몇 살인가요?
이창호는 1975년생으로 2026년 10월 현재 만 51세입니다. 1986년 11세에 프로기사로 입단했습니다.
Q. 이창호의 2,000번째 승리는 누구를 상대로 거뒀나요?
2026년 10월 26일 레전드리그에서 최명훈 9단을 상대로 거뒀습니다. 흑을 잡고 207수 만에 불계승했습니다.
Q. 프로 통산 2,000승은 세계대회에서 2,000번 이겼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세계대회뿐 아니라 국내 공식 대회와 프로리그 등에서 쌓은 개인 통산 승리입니다.
Q. 이창호의 통산 승률은 얼마나 되나요?
2,000승 달성 당시 공식 승률은 70.67%입니다. 통산 전적은 2,831전 2,000승 1무 830패입니다.
Q. 이창호 이전에 프로바둑 최다승 기록을 가진 선수는 누구였나요?
스승 조훈현 9단입니다. 조훈현은 1,968승을 기록했고, 이창호가 2025년 12월 1,969승으로 이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Q. 이창호가 돌부처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표정을 쉽게 바꾸지 않는 침착한 승부 태도와 정확한 형세 판단, 뛰어난 끝내기 능력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Q.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은 무엇인가요?
2005년 농심신라면배에서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남아 중국과 일본 기사들을 상대로 5연승을 거두며 역전 우승을 이끈 명승부입니다.
Q. 이창호는 지금도 현역 프로기사인가요?
그렇습니다. 2026년에도 수소도시완주 소속으로 레전드리그에 출전하고 있으며, 공식 대국에서 승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Q. 이창호의 2,000승 기념식은 언제 열리나요?
한국기원 발표에 따르면 2026년 11월 3일 오후 2시 한국기원 신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오늘 뉴알남이 풀어드린 이슈, 이해에 도움이 되셨나요? 🙂 앞으로도 뉴스 속 궁금증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주요 출처
2,000승 달성·공식 경기 기록
연합뉴스 — ‘바둑 전설’ 이창호, 세계 최초 프로 통산 2천승 금자탑
사이버오로 — 이창호, 프로기사 세계 최초 통산 2,000승 달성
스승 조훈현과 기록의 역사
한국기원 — 이창호 9단, 통산 1,969승 최다승 신기록
서울신문 — 1990년 이창호의 최고위전 우승과 조훈현 사제 대결
한국기원 —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 대결을 다룬 영화 ‘승부’ 관련 자료
